사람과 과학의 미래를 그린 SF의 진정한 고전, 메트로폴리스(1927)
- 과학자가 추천하는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최신 SF 영화들은 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며, 인류가 꿈꾸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SF 장르는 관객들에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 장르 중 하나다. 그런데, 컴퓨터 그래픽 이전의 초기 SF 영화에서도 미래 사회를 그럴듯하게 구현해낼 수 있었을까. SF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거의 90년 전인 1927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놀랄 만큼 멋진 미래 도시를 그려내 후세 수많은 SF 영화의 전형이 되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탄소재료 연구단 소속인 이선화 연구위원이 흑백의 무성 영화인 메트로폴리스를 추천한 이유도 이 작품이 고전의 위대함을 확인시켜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 지하세계에 있는 기계의 모습.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기계를 작동시키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선화 연구위원은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보면, 제작 시기가 무색하게 느껴진다며 감탄했다. 영화 전편에 깔린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플롯이, 90년 전에 생각해 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미치광이 과학자가 욕심으로 인해 괴물(로봇)을 만들어내지만, 결국엔 정의가 이긴다는 다분히 전형적인 이야기 구성을 차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에 흑백 무성 영화로 이런 미래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새로웠죠.”
연출만 세련된 것은 아니다. 영화가 관객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고도로 산업화된 미래 도시를 그려낸다. 영화는 부유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지상 세계와 이러한 지상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일을 시키는 지하 세계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도시 통치자의 아들인 주인공 프레더가 지하세계의 여인 마리아를 만나는 장면은 매우 극적으로 묘사된다. 지하세계의 아이들에게 지상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형제라고 말하는 마리아를 보고 크게 충격받는 프레더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마리아는 영화에서 성녀와 같은 존재로, 노동자들을 구원하고 프레더가 중재자가 될 수 있도록 그의 임무를 일깨우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은 것으로 분석되는데, 동정녀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여주인공 마리아가 중재자 프레더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리아의 계획을 알게 된 미치광이 과학자 로트방은 마리아와 닮은 로봇을 만들어 사람들을 선동하여 세계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결국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프레더는 노동자들과 아버지를 화해시키는 중재자가 되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리아의 모습을 한 가짜 마리아 로봇이 매혹적인 춤을 추자, 소위 상류층에 속한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마리아에게 현혹되어 어리석은 바보처럼 서로 뒤엉켜 싸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매한 군중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문명의 발달이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자나 기술 개발자가 불순한 의도를 갖는다면, 사람들을 쉽게 현혹하여 우매한 군중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경고처럼 보였어요.”
▲ 미치광이 과학자 로트방이 마리아와 똑같은 로봇을 만들어, 사람들을 선동하고 메트로폴리스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이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지만, 연구자는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지 항상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짜 마리아 로봇은 인공지능 로봇에 속한다. 이 연구위원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대신 해줄 수는 있겠지만, 역시 기술 개발자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늘 과학의 양면성을 고민하는 그가 꿈꾸는 미래 도시가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 속 도시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도 전혀 촌스럽지 않아요. 제가 상상하는 미래 도시의 모습도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SF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날씬하게 생긴 비행기를 자동차처럼 타고 다니며 도시를 누빈다든지 우주여행을 자유롭게 한다든지 하는 미래는 별로 상상하지 않아요. 그러한 기술을 개발하고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집, 종이처럼 접어서 들고 다니는 노트북 정도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선화 연구위원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 도시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 너무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 답했다. 이 연구위원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내는 재료공학자다.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과학자로서, 우리가 살아가게 될 미래 도시의 모습에 책임감을 느끼는 만큼 신중한 모습이다.
이 연구위원은 재료공학자로서, 과학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소재가 종종 궁금해진다고 했다.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은 어떻게 그리 강한 강도와 탄성을 갖는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어떤 금속 소재여서 뚫을 수 있는 무기가 없는지 생각해본다고 한다. 대학 때부터 재료공학이라는 한 분야에 매진해 온 이 연구위원에게 어울리는 재미있는 생각들이다.
“재료가 쓰이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기 때문에 재료공학은 화학, 물리, 전자, 기계, 생명 등 많은 학문 분야와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만큼 다양한 연구들을 해볼 수 있죠. 다양한 연구 분야의 그룹들과 공동 연구를 해볼 수 있고, 세상에 없는 새로운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IBS 다차원탄소재료 연구단에서 다양한 탄소 결합 중, 다이아몬드와 같은 sp3 탄소 결합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매우 높은 굳기와 우수한 열전도도, 생체적합성 등 sp2 결합 기반의 그래핀과는 또 다른 재미있는 특성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탄소 결합의 최종 산물을 합성할 때, 다이아몬드 모양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기 전구체를 이용하여, 원하는 형태와 성질을 지닌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 이선화 연구위원은 IBS 다차원탄소재료 연구단에서 새로운 탄소 동소체의 합성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끝으로, 이 연구위원은 SF장르의 또 다른 고전으로 ‘블레이드 러너’를 추천했다. 1982년에 나온 이 영화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시한부 복제 인간에 관한 영화다. 미래에 하기 어려운 일들을 대신 시키기위해 만든 복제인간들. 인간들은 이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복제 인간들은 포악한 인간들로부터 벗어나려 탈출하지만, 이들을 잡으려는 인간 세력은 잔인하기만 하다. 인간과 달리, 복제인간들은 서로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다른 인간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은 인간의 비인간성과 비인간의 인간성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인간과 기술 발전의 또다른 이면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내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이 연구위원. 그녀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속 욕심 많은 과학자 로트방의 태도를 경계하며, 머리와 손을 연결하는 것은 마음이어야 한다는 영화감독과 뜻을 같이 하는 이 연구위원. 언제나 과학이 사람을 향하는 미래에, 새로운 재료들을 만들어내는 과학자로서의 이 연구위원을 다시 보길 기대한다.